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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기적의 사람들.

by Holy Worshiper 2011. 4. 5.

 신약 성경에는 27권의 책들로 이루어 져 있다고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그중에서 많은 성도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들인 복음서는 4권입니다. 4권의 복음서가 순서대로 말씀 드리면 마태복음, 마가 복음, 누가 복음, 요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는 내용이 비슷 합니다. 성경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세게의 복음서는 비슷합니다. 내용도 예수님의 탄생등이 잘 기록 되어 있고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은혜를 나누고 있는 요한 복음은 좀 다릅니다. 그래서 뭐라고 부른다 하지요? 바로 4번째 복음서 라고 부른다고 말슴 드렸어요. 특이 이 요한 복음에서는 거듭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 많은 이단들이 등장하고 거기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 거듭남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부족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이 거듭남에 대해 은혜를 나누면서 거듭남이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말씀 그대로 빌리자면, 즉 거듭남이라는 이야기는 다시 태어난 다는 말인데요, 예수님 의 말슴을 그대로 빌리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이에요? 닮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감사 할게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 교회 와서 제가 아이를 가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깨끗한 청정 지역에서 아이를 가지니까요 걱정도 안되더라고요. 다현이가 애기 였을때는 워낙 세상이 지저분 하고 오염도 되고 해서요, 애가 잘 나오려나. 하고 걱정 한게 사실입니다. 워낙 안좋은 말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 둘째 태어날때는 병원도 잘 안가고, 이렇게 깨끗한 동네에 있으니까 이녀석도 건강 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고요, 역시 건강한 아이를 둘째로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데요. 이 둘째가 딱 태어났는데, 아 글쎄 누구를 많이 닮았어요. 누구를 많이 닮았게요? 지금 보면 누구를 닮은거 같으세요? 어제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목구비는 엄마를 닮고, 얼굴 형은 아빠를 닮았다고. 그런데 딱 태어났을때는 다현이랑 판박이더라고요. 어쩜 그리 비슷한지 참 신기해요. 그런데 외모만 닮은게 아니에요. 저희 첫재 다현이랑 있다고 보면요, 성격이요 저랑 똑같습니다. 혈액형도 똑같고요. 왜 그렇습니까? 이 녀석이 너희 부부에게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할렐루야? 다른 사람들에게 났으면 안 닮았겠죠. 피도 다르고요. 우리 성도님들 자녀분들 다 보면 우리 성도님들 닮으셨죠? 우리 이말희 권사님 아드님들 보니까 딱 반반식 닮으셨던데요.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누구 닮으셨겠어요? 우리 성도님들의 부모님이시겠죠 당연하지요.

바로 여기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뭐에요? 우리의 부모가 물 그리고 성령이 된다는 것은 그것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물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 그리고 성령님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거듭남이에요. 그게 한번에 딱 되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지 않고, 서서히 되는 분들도 계십니다. 지금 천천히 되어가는 중인분도 계세요. 다 거듭 남인줄로 믿습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예수님의 말씀 이에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날마다 거듭 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야함을 말씀 하시고 4장에서 예를 보여 주시기를 우물가의 여인의 예를 보여 주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기 위해서는 남편을 데리고 와야 한다. 즉 우리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한다. 말슴 드렸고요. 지난 시간에는 하인의 믿음을 통해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의 모습을 말씀 드렸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모습.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모습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성경의 순서대로 가면 사실 오늘 5장인데 이 5장과 6장은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5장은 예루살렘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내용이고, 6장은 갈릴리에서 하신 내용인데, 저희는 예수님의 행적의 순서를 따라 6장의 은혜를 나누고 5장으로 가겠습니다.

6장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우리 성도님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말씀입니다. 이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 즉 오병, 보리떡 다섯 개, 이어,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점점 유명히 지신 겁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이 중기로 올라가고 있는데요, 점점 예수님 만나서 병을 고친 사람이 등장하고, 예수님이 이제는 대단하게 칭송을 받기 시작 합니다. 도저히 고칠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 의사란 의사는 다 못고치는 병을 예수님을 고치시기 시작 하거든요. 또 얼마전에는 아주 유명한 헤롯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치니까 대단해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점점 한두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고침을 받게 되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이 궁금해 지기 시작 하는 겁니다. 그러던중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신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시면 2절 같이 보시겠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온갖 병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호기심에 온 사람들 온갖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보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운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시기 시작 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시작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 사람들이 갈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이제 예수님도 쉬시고, 이 사람들도 집에가서 먹을 것들을 먹어야 하는데 갈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아요. 왜 그러셨을까요/ 이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왔고, 여러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할수 있기 때문에 그 바다를 빙 돌아 왔는데, 예수님의 마음은 그들이 너무 안타까우신 거에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실 다 병든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 성도님들 지금 당뇨로 고생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리고 연로 하셔서 교회 오고 싶어도 못오시는 분도 계시고, 무릎이 아프신 분, 여러 가지로 아픈 분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뿐인줄 아십니까? 우리는 겉으로는 다 멀쩡해 보이지만요 속은 다 병든 사람들이잖아요. 열등감에 병들고,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서 병들고, 외로워서 병들고, 옛적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의 아픔 때문에 병들고. 우리 뿐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절대 모른다고 모른척 하지 않으시는 주님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는요. 우리가 죄인이고 어떤 잘못을 하고, 그런거 물으시지 않습니다. 그져 우리를 보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주림과 우리의 몸의 질병의 문제. 그리고, 마음의 상처들의 문제. 모든 문제들을 다 어루만져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냥 그분을 따라 오면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오면 되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라 혹은 너는 왜 그런 죄를 지었으면서 뻔뻔하게 나와 있느냐고 절대 나무라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의 먹을 것을 걱정 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말은 안하지만 그 먼길을 돌아 따라 왔으니 먹을 것이 없겠구나. 힘들겠구나. 아시는 거에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마음의 짐. 마음의 필요를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돈이 너무 급한데 그 돈이 필요한지. 아니면 정말 각막해진 마음이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지, 아니면 관심이 필요한지. 아니면 눈물이 필요한지. 예수님께서는 다 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니까 이들이 배가 고플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묻습니다 우리 5절 함께 읽습니다.

빌립이 뭐라고 합니까? 7절입니다.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200데나리온 이면 1 데나리온은 성인의 일당입니다. 지금으로 하면 5만원 시골 시세로요. 그러면 200데나리온이면 얼마네요? 천만원 이죠? 그래도 뭐라고요? 무족 하다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천만원 어치 빵을 사도 부족 하다니. 한마디로 빌립의 말은 뭐에요? 예수님 우리 돈 없습니다. 이 사람들 어떻게 먹여요. 그냥 빨리 보내세요. 이겁니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이 성경에서 오병 이어의 기적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혀질수 없었을 겁니다. 그때 등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안드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가장 먼저 나왔던 안드레. 그 겸손하였던 안드레가 예수님께 어린 아이 한명을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9절입니다.

있긴 있는데 너무 작다는거에요. 이 소년이 안드레에게 준 음식으로는 너무 작지 않겠느냐 이거죠. 고작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로 어떻게 다 먹이냐 이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오병 이어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이제 사람들을 앉히라는 거죠. 그리고 떡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 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고 물고기를 떼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니까 계속 나오는 거에요. 계속. 사람들이 쉬지 않게 먹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까 바구니 12개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14절 함께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데 있어서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요. 다시 말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게 된데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 성도님들 꼭 깨닫는 시간이 되시리를 축복 합니다.

오늘 기적이 일어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 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고, 한 아이 였습니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작은 도시락. 오병 이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이게 기적을 일으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어요. 성도 여러분 살아 가면서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놀라운 기적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 잘 보시면 그 기적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 아이의 모습이 기적의 요인이었어요. 이 소년이 가지고 온 것. 턱없이 부족 했습니다. 말도 안되지요. 이것으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 다 먹입니까? 그런데 이 소년은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다는게 중요해요. 이 소년은 그냥 자기 혼자 그것을 먹었으면 소년한테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혼자 먹으면 그건 충분한 양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소년이 그것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우리, 즉 이웃을 위해 내어 주었을 때 그것이 기적의 조건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오병 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한 것 보여 주시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 이에요. 내 것을 내어 놓을 때에 기적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많건 적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쓰기 시작 할때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내가 더 풍족해 질 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 지는 놀라운 역사를 만드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섬기기 위한 모습으로 나올 때 바로 기적의 출발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꼭 전도사인 저를 섬기라는 게 아닙니다. 나 혼자만 생각 하는게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바로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지금 성도님들의 눈은 어때요? 내 문제만 바라보고 내것만 어떻게 해결 하기 위한 좁은 시야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병 이어의 핵심은 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에 대한 접근이다. 이 소년은 분명히 자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음식 이었다. 그런 소년이 그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갈 때 어찌 망설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소년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도 여러울수 있어요 우리 말에 내코가 석자야 하죠? 그런데요.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가 아니다. 우리를 위해. 내 이웃을 위해. 그러면 나도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 기적의 창조자. 조력자가 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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