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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은혜를 맛보아 알라. (시104편, 베드로전서 2장)

by Holy Worshiper 2020. 4. 17.

은혜를 맛보아 알라. 

시편 104편, 베드로전서 2장

1.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라.

예전에 호주의 한 동물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호주 동물원에는 호주에만 사는 특별한 동물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코알라, 캥거루 같은 동물들이다. 그런데 그중 왈라비라는 동물이 있다. 이 왈라비는 캥거루처럼 생겼는데, 일반적인 캥거루를 그 크기가 상당히 큰 반면 이 왈라비는 비교적 작은 몸집을 가졌다. 동물원에 가면 이 왈라비를 풀어놓고 누구든지 가깝게 만질 수 있게 했는데, 이 동물이 가까이 다가오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사료를 구입해서 손위에 놓고 있으면 이 동물들이 다가와서 그 손 위에 놓여 있는 사료를 먹는다. 성격도 온순한 편이라 어린 아이들도 손 위에 사료를 놓으면 왈라비들이 와서 그 손에 놓여 있는 사료를 먹는다.

오늘 시편의 말씀을 묵상 하는 가운데 예전의 이 경험이 떠올랐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104: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 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

시편 104편은 세상의 만물들의 살아가는 삶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물을 주셔서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성경처럼 결국 모든 만물들이 주님을 바라보며. 때를 따라 먹이 주시기를 기다리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고, 그 손에 있는 것을 주시해 먹으면서 만족해하는 만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세상 모든 만물은 결국 주님께서 먹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팔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진리를 알고 세상을 다스린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다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 앞에서 우리의 자세 두 가지를 말한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바라보고. 왜냐하면 먹을 것을 주시고 우리를 살게 해 주시는 분은 한분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이 주시는 근원적인 힘만이 우리를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특기할 단어. 바로 만.이다.주님만. 주님께 주시하고.

이어서 하는 것은 때를 따라서 주시기를 기다리는 신앙이다.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은 늦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시간을 그릇 됨이 없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를 완성시키시는 시간이고,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시간이 가장 정확한 시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의 정확한 예가 만나이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시간에 만나가 내렸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며 따랐다. 주중에는 그날의 것을 거두고 안식일 전에는 이튿날 것 까지 거두라고 하셨다. 

이 말을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고 거둔 자들은 광야의 삶 동안 결코 주리지 않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나 욕심껏 자신의 생각대로 채웠던 인생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결국 하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에게 합당하게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믿으라.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된다. 주님께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며 주님의 손에 집중함으로 주시는 은혜를 맛보길 소망한다.

 

2.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어떤 것을 맛보는 것인가? 이 앞 구절까지 이어서 보면 본문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버리고 사모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악독이다. 독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기만 한느 것. 타인에 대해 무시하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 그리고 외식이다. 겉으로는 그럴싸 하지만 실제로 텅텅 비어 있는 삶의 태도. 치장은 그럴싸 해도 결국 믿음도 없고 신앙도 없고 껍데기만 남은 신앙.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외식을 걷어 치워 버려야 주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시기를 버려야 한다. 타인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시기하는 것. 이웃집 아들이나 딸. 들의 출세에 대한 시기. 그리고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우리의 입술의 언어가 어떤 말이 되어 하나? 비방이 아니라 축복하고 축하하는 말. 꼭 말하면 보면 나중에 욕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고 흉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다. 건강하지 못한 영적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마귀한테 속고 사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말하고 그렇게 살면 내가 더 똑똑해지고 의로운 것 같이 느껴지지만 결국 더 공허해질뿐이다.

그래서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순령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누구처럼? 갓난아기들 같이. 

지금 우리 집에 젖먹이 아이가 있는데, 아기는 배가 고프면 밥을 달라고 울어댄다. 그것이 있는 힘껏 운다. 밥을 줄 때까지 운다. 그리고 자기가 먹을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주면 더 울어 댄다. 우리가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 나에게 주시는 지식 같은 것. 그러니까 신령한 젖을 맛보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본 사람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것이 얼마나 나를 살리고 힘이 나게 하는지 안다. 그러니까.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마치 젖먹이 아이가 그것을 구하듯. 그리고 그것을 먹고서 편안하게 잠이 들 듯.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가 우리 가운데 멀어지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시름시름 앓게 되고 은혜 아닌 다른 것으로 살아가면 삶에 힘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 하였을 때 밧세바와 간음한 뒤 그가 두려워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님의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나의 범죄함으로 내가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 나를 떠나지 마소서. 나를 새롭게 해 주시고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오늘 주님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사모하라. 주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기도함으로 구하는 성도가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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