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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십니다. (시편 71편, 디모데후서 3장)

by Holy Worshiper 2020. 4. 16.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십니다. 

1. 항상 피할 바위는 하나님이십니다.

( 71: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흘러가고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있을까? 

얼마전 아이들과 수원에 갈 일이 있었다. 가는 도중 예전에 다녔던 모교 앞을 지나게 됐다. 시간이 벌써 30년 가까이 흘렀는데,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인근의 상가와 주택 단지들은 다 사라지고, 지하철 역과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당시에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환경뿐 아니라 사람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러하다. 과거의 비해 변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변화하는 것들을 금방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 건강은 계속 건강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갖고 있는 재력 혹은 권위가 마치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보면 아. 내가 의지했던 것들이 영원한 것이 아니었고 변하는 것들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고 절기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꽃과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을 반가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어김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변화하는 것들을 의지하면 불안함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걱정부터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내 일자리의 문제, 사업의 문제, 결혼의 문제. 그런 문제들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어떤 행동을 먼저 하는 지를 살펴 봐야 한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 내가 흘러가는 것을 의지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지금 내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먼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먼저 붙잡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지혜를 주시고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지혜를 주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71: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먼저 무엇을 하는가? 주님. 주님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어 주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항상이라는 단어이다. 언제나 크던 작던 어떤 걱정거리와 문제가 있을 때 제일 먼저 그 바위 밑어 숨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 커다란 바위이신 하나님 뒤로 일단 가서 의지하는 것이다. 그 뒤에서 엎드려 붙잡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때 어떤 은혜가 오는가?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하나님의 구원이 온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문제 해결이다. 상황이 해결되어서 직장, 사업, 결혼, 자녀, 건강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그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져서 오히려 담대하게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마음이 되던가 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요새가 되신다는 담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들. 우리가 피할 바위는 주님품임을 기억하며 먼저 주님의 뒤로 가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2.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라.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두 번째 구절인 디모데 후서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자녀인 디모데에게 쓰는 서신인데, 사도 바울은 평생을 주님을 위해 살았다. 자 그렇다면 그의 노년은 어떠해야 할까? 사람들한테 존경도 받고 인정도 받고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의 편에서 변론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면서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한다.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사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그 상황에서 힘을 주시더라는 것이다.

 우리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적인 힘은 사람들의 숫자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런데 사람이 많다고 그곳이 정의로운 곳인가? 사람이 많다고 옳은 곳인가? 그렇지 않다. 옳고 정의로운 곳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대인들 6백만 명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그 숫자가 가히 엄청난 숫자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5천만인데, 우리 인구의 10분의 1 정도가 죽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히틀러의 만행에 앞장서서 독일 국민들이 찬성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찬성한 일, 동조한 일이 정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유명한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나온다.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서 가나안을 정탐하게 한다. 각 지파에서 대표로 한 명씩 뽑아서 정탐을 보낸 것인데, 이들 12명 중10명이 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하지 않았는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말씀을 듣자고 한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약속의 땅에 가지만 그렇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사도 바울도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고백이 나온다.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살다 보면 악한 일이 일어난다. 여기서 악한 일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말한다. 삶에 찾아오면 많은 어려움들. 때로는 모함도 당할 수 있고, 사업도 어려울 수 있고 자녀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그런데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는가 하면 건져 내시더라.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걱정 많이 하고 근심이 당연히 찾아왔는데,그래도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믿고서 주님의 일을 계속하였더니 결국 그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내주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어떻게 된다고 말하냐면.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전에 고난 중에서 건져내주신 것 생각하면 죽어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에도 건져 주셨고, 앞으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더라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을 갖고 구원하셨던 하나님. 앞으로 또 책임져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오늘 순종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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