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에는 기이한 복음
1. 복음을 이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호 8: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구원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자체를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구원이라 함은 어려움 가운데에서 건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도록 힘을 주시는 것이고,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리고 그렇게 희망만 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주님은 그 가운데에서 이끌어 내시는 것이 구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구약은 주로 서사적으로 그런 표현이 많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 한가지를 꼽아 보자는 사사기 6장부터 나오는 기드온을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정복한 뒤 그곳에서 경험하는 역사들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그 땅은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정말 좋은 땅이었다. 그런 좋은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삶의 여유가 생기게 되자 이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범죄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정신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세상 만물을 사랑하면서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성정은 더 갖고 싶어 하고 더 탐욕을 부렸다.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이 내 힘으로 가졌다고 생각했다.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됐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그 결과 범죄함에 따라 어려움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가 싫다 이게 아니고 죄로 인해 필연적으로 오는 것이 고난인 것이다. 기드온 시대에는 미디안이라는 이방 족속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다.
성경을 보니까. 곡식을 추수할 때가 되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가는 것이다. 힘이 없으니 대항할 수가 없었다. 고난이 오면 이들은 또 하나님께 기도하고 엎드린다.
너무 힘드니까 도와 달라고 엎드리자 주님은 구원해 내시기 위해 기드온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군대를 모으는데, 지금 대적한 미디안 군사는 13만 5천 명이다.맨 처음 군대를 모았을 때 숫자는 3만 2천 명이었다. 13만과 3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원치 않는 자는 돌아가라 해서 만 명이 남았다. 13만 대 만 명.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시고 결국 삼백 명만 남게 됐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사람의 숫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주님의 방법은 우리를 넘는 방법이다.
성경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호 8: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성경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복음을 알게 이해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2.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요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세상의 방법과 주님의 방법은 참 많이 다르다. 물론 일반적으로 보면 세상은 상식적인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보면 우리가 알던 상식이 오히려 비 논리적이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참 많다.
예를 들면, 타조는 미련해서 위기가 닥치면 머리를 모래에 처박아 자기만 보지 않으면 안전하다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타조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둥지를 감추기 위해 둥지 위에 엎드리는데, 이것을 타조가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옳은 진리는 정말 드물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의 진위 여부가 가려지는데,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진리의 말씀이 바로 이 복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말이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사람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그리고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이것저것을 묻는데 어찌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알 수 있겠는가?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나온다.
(요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내가 왕이니라. 빌라도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왕이 없다. 물론 분봉왕이라는 헤롯이 있었지만 그는 정식 왕이라기보다는 관리자 개념이기 때문이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고, 오직 이스라엘을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황제가 왕이었다.
그런데 나사렛 출신의 젊은 청년이 붙잡혀 왔는데, 스스로 왕이라고 하니 이는 이해가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고, 예수님을 통해 기적과 권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온 세상의 왕 아닌 신가?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믿는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믿는다. 그분이 왕이라고 선언하셨으니 빌라도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분이 온 인류의 왕이심을 믿는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이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이다. 예수님이 우리 왕이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귀를 열어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진리란 예수님 자신이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 우리를 그 오랜 죄악 가운데에서 건져 내주신다고 믿는 것이 진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가?
이천 년 동안 이 십자가의 복음만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교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법도 변한다. 하지만 십자가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우리는 이 진리에 굳게 선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의 백성인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범죄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의 십자가 사건. 그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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