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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영생을 살아간다는 것. (창세기 18장, 로마서 6장)

by Holy Worshiper 2020. 4. 17.

영생을 살아간다는 것.

창세기 18장, 로마서 6장

1.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18: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으로 그 믿음의 계보가 이어짐을 알 수가 있다. 본래 갈대아 우르 지역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가나안 지역으로 와서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르에 살고있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말씀하신 곳을 향해 가는 것에서 믿음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참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아브라함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다. 선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우리 스스로의 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1:4)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번역)

우리가 주님을 믿은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창조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셨다고 하신다. 즉 신자의 믿음은 개인의 결단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선택과 택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선택 하셨을까?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분들은 그 전도를 쉽게 받아들이고 복음의 내용에 동의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 복음의 내용에 동의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왜 어떤 이는 쉽게 믿음을 갖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이 역시 알수 없다. 누가 보더라도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믿음을 갖기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본다. 한편, 저 사람은 정말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사람이야 라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믿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본다.

누가 구원을 받을 대상인지, 누가 믿음을 가질 만한 사람인지의 판단 기준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우리가 오늘의 성경을 기억해야 한다.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새 번역을 보면 더 뚜렷하게 나온다.

(18: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성도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무엇으로? 성경으로 주의 말씀으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 즉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그다음에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또 그들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가르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성도의 구원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 자녀들에게 그리고 우리 이웃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복한다.

 

2.영생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의 마지막은 무엇인가 하면 영생이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의 연장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그일을 위해 주님은 오셨다. 영생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은 죄 사함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는 결국 죽음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의 반대말은 죄된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목적 즉 영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힌트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죽지 않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이생의 삶이 다할 텐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죄의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그 대답이 나온다. 죄인의 오염된 삶에서 벗어나는 생활을 말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말도 마찬 가지다. 죄로 오염된 삶에서 벗어나는 생활을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을 통해 이 부분을 강조한다. 바로 죄로부터 해방,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다음에는?? 그것으로 끝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이제는 죄를 끊은 생활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의 모든 죄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들을 말한다. 이 모든 죄들을 다 용서해 주셨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하루아침에 우리의 생활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아름다워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은 타락해 있고, 여전이 우리의 죄던 습성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우리가 벗어 버릴 것인가?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감에 그 대답이 숨어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 즉 하나님과 가까이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말이다..

사실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를 이겨낼 수가 없고 죄를 이기기가 정말 힘들다. 수없이 실패하고 넘어지지 않았는가? 더 이상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언제 힘을 주실까?

우리가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때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 첫 단계가 바로 하나님과의 자리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 자리가 중요하고 이 말씀을 듣는 새벽의 자리가 너무 중요하다. 이 시간 만큼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유지해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콩을 심어 본 적이 있었다.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었다. 그것은 내 몫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봤더니 그곳에 열매가 맺혔고, 콩이 주렁주렁 열렸다. 주님과의 관계가 무르익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매가 맺힌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밭을 갈고, 물을 주는 최소한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이 나타날 때 비로소 열매 맺는 성도의 삶이 될 것이다. 영생을 사모하며 영생 길 속에 있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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