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말씀 나눔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장)

by Holy Worshiper 2020. 5. 3.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장 5~8절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할렐루야. 주님의 평화가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라는 제목을 하나님 말씀 증거토록 하겠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가 지금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는데, 지금 사도행전 8장은 기쁨이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 아닙니까? 왜냐하면 이전에 교회들에 대한 핍박은 있었지만 간헐적인 것뿐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위협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죽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지금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병든자가 낫고 기적이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가는 능력이 막 일어나니까 고난이 있어도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몰려 들어서 구제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빠지고 소외되는 일이 일어나니까 신실한 7명의 집사를 뽑습니다. 교회가 일꾼을 뽑았다는 것은 엄청나게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이 있어도 성장하던 교회가 정말 큰 핍박이 옵니다. 바로 스데반이 죽은 것입니다. 사도들이 희생을 당하고 핍박당하는 것과 스데반이 당하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려니 그렇다 치더라도, 스데반이 죽었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어려움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지, 그가 죽고 나자 경건한 사람들, 교인들이 울음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이들이 흩어질 때, 기쁜 마음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눈물을 머금고 저마다의 자리를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슬픔 가운데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흩어진지 얼마 안 되어 그런 슬픔의 자리에서 오늘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이 간 그곳에 기쁨이 왔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을 통해 그렇다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두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환경보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단순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1.환경보다 하나님을 붙잡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 믿는 성도들이 능력도 행하지만 그만큼 고난도 많이 당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이 정말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씀도 능력있는 사람이고, 권능도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잘되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볼 때 잘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한테 인정 받고 사람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 이것이 잘되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스데반은 실패한 인생일 것입니다. 설교하다 맞아 죽었는데, 누가 이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를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쉽게 지금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이런 겁니다. 지금은 설교하다 죽는 일이 없으니까.

요새는 정말 경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쉴틈 없이 일을 하고 일할 때마다 돈을 모으는데, 신앙의 결단을 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그 시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려야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배의 시간 이후에 사람들을 더 많이 보내 주셔서 막 사업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농사도 잘 되고. 이래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망하게 되는 거죠. 물론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오늘 스데반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드리면 그런 겁니다. 정말 열심히 정직하게 성경 말씀대로 따르고, 주일성수와 십일조, 감사헌금 철저히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면서 신실한 사업체로 일궈 나가려고 수고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주변에 시기와 질투가 막 생겨나게 되고, 급기야는 문을 폐업 수순으로 가는 경우로 비유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돈도 투자하고 다 투자했는데 환경이 나아진 게 아니라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이 말입니다. 스데반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그런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다윗 이야기 많이 하는데, 다윗이 본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양떼를 치고 있는데, 어느날 집에 사람이 찾아와서는 막내를 불러오라는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왕이 된답니다. 다윗은 믿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믿은 거죠. 그러니까 골리앗하고 싸우러 갈 때도 돌멩이 주워가서 싸우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기름부음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골리앗도 죽이고 나가는 전쟁에서 승리해옵니다. 자연스럽게 다윗이 왕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사울이 시기하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무슨 죄가 있어서요? 그런데 실제 다윗의 삶 속에 그런 괴로움의 순간이 찾아 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경을 자꾸 보면 안 됩니다.. 세상의 논리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적 조건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 조건보다 뛰어난 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을 때 아담과 하와가 잘살았습니까? 아니요. 에덴에서 그들은 범죄 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간을 금식하셨는데, 오히려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다음에 교회가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중에 빌립집사가 오늘 성경에 나오는데, 빌립집사는 정말 괴로웠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하고 집사 동기예요.. 같이 세운 받았습니다. 얼마나 친했을지 가히 추측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죽었으니 얼마나 슬퍼요. 그런데 오늘 성경 보십시오. 빌립 집사는 그 가운데에서도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전하다가 스데반 죽었는데, 뭐야 하나님이 그것도 못 지켜주셔? 하고 하나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순종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했듯 사마리아로 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전합니다. 빌립은 환경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경에 그의 마음이 영향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 겪었다고, 예수님 전하다가 죽었다고. 왜 안지켜 주셨냐고. 평생 주님을 전한 결과가 이거냐고. 왜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그래도 빌립은 순종하는 거예요.. 왜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분명 예루살렘 교회는 망해서 뿔뿔이 흩어졌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 했는데, 이곳에서 순종했더니 막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환경이라는 것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어두움의 순간에 빛이 더 발하는 법입니다.

환경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핑곗거리가 생겨납니다. 환경이 좋으면 너무 편해서, 환경이 나쁘면 너무 지금 상황이 안좋아서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건강하면 놀기 바쁘고 아프면 원망하기 바쁩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부터 삶의 열매로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2.단순하게 살 때 능력이 나타난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 교회는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흩어지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살게 됐다는 말입니다. 박해가 얼마나 심했으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서 살아야 했을까요? 이 부분만 보아도 상당히 어려움 가운데 급하게 떠난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단순하게 떠납니다. 많이 두고 갔을 겁니다. 왜요? 스데반을 보니까 그렇게 많이 갖고 갈 필요가 없는 것 같거든요.

솔로몬은 전도서 7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어제 잔치가 있긴 했지만, 실제 잔치보다 우리가 더 많이 배우는 곳은 초상집 이죠. 헤어진 것도 슬프고, 얼마전까지 울고 웃던 이들과 만나지 못하는 것도 슬프지만, 죽음이 뭔지. 그것이 나와 멀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배우는 점이 많기 마련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이 여행을 많이 했는지 아니면 여행을 많이 안 해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로 가방이 크면 여행을 많이 안해봤을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여행을 할 때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혹시 몰라서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면 큰 트렁크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넣고도 또 가방에 집어넣어서 짐이 많이 집니다.

그런데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짐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여행을 갈때는 이것저것 많이 넣어 갖고 갔는데, 몇 번 가니까 제일 편한 것은 가방 하나 메고 가볍게 다녀오는 겁니다. 옷이 빨아 입으면 되고, 급하면 하나 사면 되고. 그런 사람은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단순하니까요.

고대 철학자 중에 디오게네스 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의 제자였는데, 이 사람이 유명해진 것은 알렉산더 대왕 하고 만난 일화 때문인데, 알렉산더 대왕이 워낙 이 사람이 독특하고 이상하다고 하니까 만나러 와서 여러 가지 대화를 하다가 감동을 받아서 소원이 있으면 말하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디오니 게스가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주시오 라고 했다고 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내가 만약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삶은 단순성이어서 힘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것에 대한 단순성일까요? 빌립을 보세요. 빌립은 스데반을 보고서, 그리스도인의 마지막은 결국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되는구나.. 이러고 사마리아에 가서 전한 겁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단순성이었습니다. 환경이고, 이득이고,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가 않았습니다. 그냥 예수님에 대한 단순성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의 성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전한 그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능력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성도는 환경에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 말씀 따라 움직이는겁니다. 그런 성도가 능력이 있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고민한다고 많은 고민거리를 싸매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나오는 답은 없습니다.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했으니 주님께 나가는 것이고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간구하라 했으니까 기도하고 간구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말씀보고 가볍게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바울을 보세요. 바울은 대단한 집안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로마의 시민권이었고, 베냐민 지파의 정통 유대인이었으며, 당대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고 다소로 가서 랍비로 활동을 약 15년간 합니다. 유력한 집안과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바울. 그런데 그런 바울은 주님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보고 간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능력이 나오는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납니다. 이여자가 계속 따라오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리를 지르자. 불쌍한 마음으로 여자의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으로 돈 벌던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해서 빌립보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속에 이들이 뭐해요? 노래합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이들은 아주 단순한 거예요.. 찬양하고 기도하고. 모든 내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거죠. 죽으면 하나님 나라 가는 것이고, 결국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하니까. 단순하게 그냥 믿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믿읍시다. 두려워 말고 단순히 믿음을 갖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환경에 사로잡히지 않고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고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어 오게 되는 어려움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심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 더욱 주님만을 바라는 단순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많은 짐들보다 더 주님께 선명히 초점을 두게 하옵소서

모든 어려움보다 더 위에 계시는 주님을 볼 때

우리 삶은 더 큰 능력이 올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능히 채우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이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