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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흩어짐의 역사. (사도행전 8장)

by Holy Worshiper 2020. 4. 26.

흩어짐의 역사

사도행전 8장 1절~8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이 우리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흩어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자의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던 120명의 사도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대단한 복음 전파자들이 됩니다. 특히 베드로가 설교하니까 오천명 삼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고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었던 병자가 낫고, 유대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믿는 예수님이 대단한 분이고 이들이 전하는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고 회개하고 이 예수님을 믿으라 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눈앞에서 본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저마다 병든 자들은 모여서 기도를 받고, 너도나도 교회로 모여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마음 문이 열리고 자신의 것을 제 것이라 하지 않고 서로 나누는 일들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예전 같은 역사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도해서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기도원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도저히 의학적으로 포기한 사람들도 저마다 교회 모여들어 치유도 받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들 중에 폐병 안 걸리신 분이 없습니다. 다 죽었다 이렇게 평가받았던 분들이 치료받아서 회복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정말 많았고 그런 간증들이 철철 히 흘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때에 맞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지금에 맞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는 것이고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열악한 나라였습니까? 지금은 정말 의료선진국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좋은 나라다 이게 선전이 됐는데,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먼저 기도하면서 나를 궁극적으로 치료해주시는 분, 몸과 마음을 완전히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의사를 통해서도 일하시고, 좋은 음식을 통해서, 때로는 정말 기도만 해서 치유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 이렇게 믿는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교회가 부흥하니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시기하는 세력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유대인 세력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 집단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 무리들을 조용히 시키고 없앨까. 이 고민하는 것이 유대 무리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스데반 집사가 설교를 하는 게 사도행전 7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모세, 다윗 , 선지자 죽 이야기를 하면서, 핵심은 뭔가 하면 이겁니다. 결국 너희는 너희 조상도 그렇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고 거절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거절한 예수님이 진짜 주님이시다. 너희 회개해야 한다 이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선지자들이 환영받은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모세도, 백성들로부터 틈만 나면 거절당하고, 엘리야 선지자는 왕과 왕비가 죽이겠다고 덤벼들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했다고 감옥에 가둬 버리지 않았습니까? 왜 전도를 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들으려고 하고 복음을 듣기 싫어할까요? 성경에 다 나와 있는 겁니다. 원래 복음은 들을 귀 있는 사람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듣는 겁니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두가 좋아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그분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정말 쉬운 이야기 아닙니까? 손해 보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무시당하는 겁니다. 왜요? 생명의 말씀은 그런 겁니다. 믿는 자가 복되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결국 스데반은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고 첫 번째 순교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이 죽고 나니까. 그 날에 그러니까 스데반을 죽인 날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아주 큰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을 위한 경건한 자들은 울고, 예루살렘 교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사도들만 남고 뿔뿔이 다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잘 믿고 믿음 생활 잘하려는 이 교회를 유대인들이 박해하면 하나님께서 그 권능으로 막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초대교회는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수천 명이 회개하고, 감옥에 가도 천사가 풀어주고 그런 권능 있는 교회였는데 박해가 오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없는 것 같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 버려 교회가 그냥 초라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성도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 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이 이제 집집마다 가서 남녀를 막론하고 옥에 이구 실 저구실로 넘깁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기에 이러한 고난이 다가왔을까요?

사실 왜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그러하고, 지금 우리나라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다들 걱정하고 있는 상황인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지에 대해서 누구도 속 시원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일들이 실제 일어났을 때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할 태도는 이 뒤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연은 없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무슨 일이든 일하실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고난의 순간 뒤에는 어김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함으로 인해서 기원전 586년도에 나라가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범죄 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바벨론 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겨주십니다. 기약 없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의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 순간에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성전도 없고 지금 이들이 붙들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가를 기도하고 모여 이야기를 하게 되고, 결국 이들이 아. 이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그래.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이런 죄가 찾아왔어 하고 깨닫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경을 하나로 모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정리된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내려오는 구약 성경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고난 너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사람들이 극심한 고난 때문에 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그곳에는 사도들만 남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유대 지역을 넘어서서 이방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지다 라는 말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 디아스포라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뭐가 선포되느냐? 복음이 선포됩니다.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많아지니까 그곳에 갈등이 생겼는데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고난을 주시면서 흩어 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정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이 하실 거야 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업이 힘들어도 하나님은 무언가 계획하시는 것이 있을 거야 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결코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대로 움직이고 계시는 분임을 믿으시면서 소망을 갖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고집이.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극심한 핍박이어서 신앙을 지키려면 떠나던가 아니면 그곳에서 핍박을 견디던가 둘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아니면 배교를 하던가 해야 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런 핍박이 왔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 어려움을 흡수하고 받아들이고 꿋꿋이 예루살렘 교회를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그곳에서 복음 전파가 어려워진 것을 알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까? 성경을 보면 그곳에는 사도들만 남고 나머지는 다 떠났다고 말합니다. 누가 믿음이 좋은 거지요? 그곳을 지킨 사도들? 아니면 자유로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떠난 신도들일까요?

우리의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핍박 중에도 예루살렘 교회를 지킨 사도들이라고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했습니다. 권능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은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박해가 왔습니다. 예루살렘을 지켜야 합니까? 이제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야 합니까?

이곳이 교회의 근본인데, 이곳이 교회의 근간인데 이곳에서 주님을 만났는데 어디를 떠납니까? 이곳이 교회의 발생지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고집을 지키고 있었고 자신들의 편견, 즉 이곳에서 시작됐어 라고 하는 편견만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의 허상을 붙잡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고집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떠난 이들은 어떠했습니까? 떠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한 행위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들이 흩어진 것은 단순히 두려워서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핍박이 오고 어려움이 왔을 때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담대하게 결단하고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박해와 핍박의 상황을 읽고, 성경적인 행보를 걸어간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도들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1:19)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1:20)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박해를 피해 떠난 이들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등 각지로 가서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의 지형으로 말하자면 지중해 연안으로 간 사람. 시리아 지역으로 간 사람 터키 지역으로 간 사람들. 그런데 이들로 인해 세워진 교회가 그 유명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가 유명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로 인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시작됐고, 이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바울로 인해 기독교의 세계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박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전적으로 움직인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들이 성경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고 집착한 사도들은 사도행전이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15장 이후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주님이 도구로 나의 집착과 나의 관심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발걸음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 이끄심에 몸을 맡겨 아멘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너머의 은혜를 예배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희가 어떤 순간에도 믿음 잃지 않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 되신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또한 내 고집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복음의 일꾼이요 순종하는 자들. 세상에 예수님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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