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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미가서 5장, 데살로가후서 3장)

by Holy Worshiper 2020. 4. 27.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미가서 5장 5절, 데살로가후 서 3장 16절

1.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내가 어찌할수 없을 때 두려움의 감정이 찾아온다.개인적으로 큰 두려움을 경험했던 것은 입대하기 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내일이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것이 큰 두려움을 찾아왔었다. 내 힘으로는 입대의 위기를 극복해 낼 수가 없었다. 모든 성인 남자라면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그때 할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다.

내가 할수 없다는 것. 이제는 내 힘으로 했지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이 가장 믿음이 좋을 때는 병원에 있을 때다.그때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던 아니던 모두가 믿음이 좋은 신실한 사람이 된다. 수술대에 눕게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기도하게 된다. 그런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 평화를 약속하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 확실하게 피난처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게 하신 분이 계시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오늘 미가서 5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5: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자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에 있었던 선지자다. 이 시대는 아하스, 히스기야 왕들이 통치하던 시기였는데, 이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정세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두려운 상황이었다. 중동 지역의 패권은 앗수르라는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앗수르는 아주 잔인한 나라였다고 전해진다.

 강력한 군대로 나라를 정복하고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은 포로로 삼으며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을 하거나 죽이곤 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나라의 강력함을 알리고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죽인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서 언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나라로 인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이제 남은 것은 남유다였다. 실제로 히스기야 왕 때에 남 유다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희망이라는 것은 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고,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감동을 하셨는데, 바로 평화에 대한 말씀이었다. 지금은 앗수르가 강하고 위대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평화를 허락하시고 모든 갈등과 문제 가운데 해결을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아무리 강한 앗수르가 들어와 공격을 하더라도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셔서 침략자들과 싸워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에 아무리 답답해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앞뒤가 막힌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버리시는 일이 없다. 여러분의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여러분의 사업. 또 우리 교회도 그러하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두고 하나님 말씀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거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 천국을 소망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우선 아닌가?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 아닌가? 우리가 이 땅에서 주의 일 하다가 충성하다가 주님 부르실 때 아멘하고 찬송하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주님 일하실 것을 분별해 가면서 믿음으로 걸어가는 성도가 되시라.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고 오로지 순종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길 축복한다.

2. 주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는 어떨 때 평안한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떨 때 마음이 편안한가?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편해질 수도 있고, 자녀들이 착하게 자라는 것으로 편해질 수도 있다. 혹은 손자들을 보며 건강 검진에서 양호 다 가는 결과를 볼 때 내 사업체에서 나에게 좋은 평가를 내릴 때 직장에서 인정받을 때 우리는 평화를 얻게 된다.

이것은 모두 안정적인 삶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이 되면 그때 평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사실 오래가지 않는다. 금방 또 불안하고 또 불안해진다.근원을 붙잡아야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다시 굳센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

오늘 살후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살후 3: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구약의 다윗을 보라. 다윗왕은 평안했는가? 그의 인생은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다.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고 있었고 사울 왕의 괴롭힘 블레셋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의 결론은 무엇으로 끝나는가 하면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으로 끝난다. 

내 평생에 주의 전을 건축하고 싶은,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으로 마무리된다.인생이 힘들었는데 왜 그런가? 그는 그런 인생의 고비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큰 위기가 닥칠 때 믿음이 좋아진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도 마찬 가지였다. 인생이 편안하고 잘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주신 은혜 나도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힘들 때는 주님 도와주세요 하고 부르짖고 좀 생활이 풀리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도하지 않는다. 내 삶의 고민이 있을 때 그 답을 찾아보려고 성경을 뒤적거리다가 내 생각으로 모든 게 다 될 것 같으면 말씀 보지 않고 쉽게 결정을 내려 버린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주님은 평화이시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내 생활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평안함을 얻게 될 것이다. 내 형편을 때로는 나아지게 하시고, 때로는 힘들게도 하신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사업도 마찬가지로 형통하게도 하시고 막히게도 하신다. 왜냐? 우리가 주님의 평화를 맛보아 하나님의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서 일하신다. 오늘 이 아침에 기도하기를 주님. 내 마음의 혼란항 마음이 답답한 마음이 주님이 이끄심으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막막한 마음이 기도할 때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하게 해 주소서.나를 평화, 진정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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