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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나눔

자기 마음과 순종 (사도행전 9장)

by Holy Worshiper 2020. 7. 21.

자기 마음과 순종

사울이 주님을 만나게 될 때 하늘로부터 홀연히 빛이 내려왔다.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주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성에 들어가면 너를 만날자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 뒤로 사울은 삼일 동안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다메섹 도성에 아나니아라고 하는 주의 제자가 있었다. 주께서 아나니에게 말씀 하셔서 사울을 만나게 하시고, 그를 위해 안수하게 하심으로 그의 눈의 비늘을 벗겨 앞을 보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오늘 성경을 보면 세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첫째는 함께 있던 일행이었다.

이 일행들은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 이다.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 하고 서 있더라

이 일행들은 누구 였을까? 이 일행들은 사울과 함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왜 사울을 따라 갔을까? 스스로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하고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어떤 기준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유대교의 대세는 이 사울이었다. 지난시간에 봤듯이 사울은 가문도 훌륭하고, 로마 시민권자에다 학벌도 좋은 사람이었다.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다. 권력자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게다가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에 성공 가도를 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아마 이 일행들은 이런 사울을 따라다닌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보통의 평범한 대중들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출애굽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았다. 하나님의 능력도 봤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도 봤고, 홍해도 갈랐다. 그 홍해를 건넜다. 하나님의 기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건 알아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이리저리 군중 심리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유명한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성막도 짓고 22년 동안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가? 모세는 이들에게 각 지파당 한 명씩12명을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보낸다. 이들은 40일 동안 그 땅을 돌아보고 왔는데, 이들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 좋은 곳인 것은 맞지만, 그곳에는 거인족들이 있고 뭐도 있고 성읍은 커서 우리가 해도 안됩니다 하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놓고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니까. 이스라엘 군중들은 하나같이 뭐라고 하는가?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급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돌아가자 이야기 한다. 누구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이제는 애굽으로 돌아가서 노예 생활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하는 군중들의 실제 모습이다.

이런 군중들의 특징은 사실이 아닌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데 있다. 결국 내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이는 내 마음이 아니라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 차 있다. 결국 욕심으로 선택하는 삶은 죽음 밖에 없지 않은가??

너의 삶을 네 마음껏 살아라. 정말 가슴 벅찬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네 마음껏이란 무엇인가? 결국 네 욕심껏 이 아닌가? 누구를 위한 마음인가? 나를 위한 마음아닌가? 만약 법이 없다면 만약 제한이 없다면 내 마음대로라는 것은 힘 있는 자가 득세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고 만다. 그게 사람인가 동물인가? 성경 역사상 가장 추악한 시대는 사사시대였다. 사람을 죽이고, 토막내는 끔찍한 이야기가 성경이 나와 있다. 그때를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말하 한다..

(21:25)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뜻에 따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사울과 같은 사람이다.

사울과 같은 사람은 너의 신념대로 살아라. 하는 사람들이다.

신념을 갖고 산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울은 신념을 갖고 살았다. 사울은 소위 가방끈이 아주 긴 사람이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하버드 졸업생 정도 될 정도이다. 훌륭한. 선생님에게 아주 잘 배운 사람이었고, 훌륭한 종교 교육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이유도 아주 확실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처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가치와 신념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 인중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얼마나 자신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지 모른다. 이 신념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죽을 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 유대인이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역사서 『유대고대사』『유대 고대사』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기록돼 있다. 로마가 파견한 유대의 총독 빌라도가 로마 황제가 그려진 군기를 한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려고 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 했던 이유가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신념에 목숨을 걸었고, 신념대로 살려고 마음을 먹었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1800년대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위대한 사상가였다. 그 사람은 20대 후반에 호숫가에 통나무 집에서 홀로 살았다. 그리고 그 통나무 집에서 22개월을 살았다. 하버대를 졸업하고,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이 사람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그의 일화 중에 유명한 일화 중 한 가지는 당시 미국의 노예 제도에 반대하며, 미국이 멕시코를 침략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아 체포를 당한다. 정의롭지 않는 일을하는 나라를 위해서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자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이 생각을 한다면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베트남의 틱쾅둑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이 승려는 남 베트남 불교계의 거목이었는데, 남베트남이 독재를 하고 불교를 탄압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635월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하는데, 정부에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거리 행진을 금지하고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그는 1963611일에 불교 가두 시위때 사이공에서 가부좌를 틀고 몸에 불을 붙여 스스로 분신을 하는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을 했다. 그의 신념으로 죽음까지 넘어선 것이었다. 온몸이 지글지글 불타고 있는 상태에서 신음 한 번을 내지 않고 얼굴을 태연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힘이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 영향을 주고, 대단한 리더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신념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올수 있는 것이 오늘 사울의 예이다. 신념은 다분이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한 것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가 없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보고 살라고 하면 사실 자신이 없다. 정말 대단한 일이고, 나에게 희생과 피해가 와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념이 맞다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 주는가?

실제로 19세기를 이성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중세를 넘어서 근대로 넘어서면서 학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 19세기가 들어서면서 이전까지 사람들은 못 배웠기 때문에 어리석은 판단을 했지만 이제 배우게 되면 이들은 강한 신념을 갖추기 때문에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교육을 시킨 나라중 한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독일은 대단한 교육의 나라였다. 무려 700년 전에 대학이 생긴곳이 독일이었고 300개가 넘는 대학이 독일에 있다. 그렇게 교육을 시킨 나라에서 대단한 신념을 갖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히틀러다. 이 히틀러로 인해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히틀러의 신념은 이것이었다. 가장 우수한 독일인으로 세상을 통일하자는 신념. 이 신념에 대다수 독일인들은 동조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신념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는 주의 제자 아나니아다.

아나니아는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더 덧붙이자면 예수님을 의 말씀을 들은 사울이다.

아나니아는 성경에 이렇게 말한다.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아나니아는 주의 제자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작가라는 동네로 가라. 거기서 사울을 만나라고 말씀 하신다. 사울이 누군데? 사울은 아주 유명한 핍박자가 아니었던가?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비밀경찰 같은 사람인데 사울을 피해야 할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그를 찾아라가 하신다. 아나니아는 주께 묻는다.

(9:13) 아나니아가 말했다. “주님,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에게 온갖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9:14) 게다가 지금 그 사람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모조리 체포할 수 있는 공문까지 받아 가지고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때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식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핍박이 오면 피해야 하고, 망할 것 같으면 하면 안된다. 그런데 주님은 아나니에게 명하신다. 그 사람을 만나라고. 그리고 사람은 내가 선택한 그릇이라고.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사울의 상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냥 가라. 그리고 그 사람 내가 선택했다.

아나니아는? 순종한다. 가라하니 갔다. 가보니 진짜 사울이 있었고, 그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이렇게 말한다.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 즉각적으로 순종한 아나니아를 통해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사울을 보라. 왜 하나님이 사울을 선택했는지 딱 나온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세례를 받는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자신의 신념으로 살아오던 이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이로 변화하게 됐다.

그리고 사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 사울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22천 년이 열리게 됐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욕심대로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고, 신념대로 사는 사람은 주변의 이웃에 영향을 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된다.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따르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욕심, 신념이 아닌 믿음을 선택하라. 예수님 가신 길을 선택하라. 그 길에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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