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하게 주님만 바라보라
시편 73편, 요한일서 3장.
1. 정결한 성도는 반드시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시 73:1)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간혹 뉴스등을 보다 보면 이런 기사들을 보게 된다. 누구 대표 수십억 횡령했으나 불구속 기소, 건강상의 이유로 보석 처리되다. 혹은 수십억 범죄를 저질렀으나 징역 3년에 불과해 이러 내용들이다.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내용들을 보면서 허탈감을 느낀다. 아무리 3년 뼈빠지게 일을 해도 저 금액을 못 버는데, 차라리 부정하게 돈 벌고 감옥에 가는 게 더 낫지 않는가. 지난 2018년도에 법률소비자 연맹이라는 데서 대학생 365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그 설문 조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10억을 주면 1년 정도 교도소 생활을 할수 있는가? 그러나 51.39% 3656명 중에 1879명이 돈 받고 교도소 생활 하겠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 조건이란 게 그런 것이다. 나쁜 짓을 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벌겠다. 그런데 작은 돈은 나에게 큰 도움이 안 되니 큰돈이 온다면 나쁜 짓 저지르겠다.
실제로 보면 정직하지 않고 의롭지 않게. 죄 저지르면서 불의하게 재물을 벌어 들인 사람들이 큰소리치면서 살아가는 것을 때때로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지금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시 73:1)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인데, 그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확실히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주시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때 정말 악하게 살았는데, 그러면 보통 죽을 때 괴로워하고 자식들도 잘 안되고 그래야 하는데, 죽을 때도 고통도 없이 죽는 사람이 많고, 오히려 윤기가 흐르고 아주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죽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도 없고, 재앙도 오지 않는데,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더 오만하고 거만하고 더욱 폭력적이 되어 가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오만해졌는지,하나님이 뭐고, 창조주가 뭐고 하면서 재산이 자꾸 늘어만 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마음이 신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삶이 힘들고 팍팍하고 힘드니 하나님이 계신 게 맞나 하고 의심도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에서 그렇게 보면 맞는 것 같다. 못되게 살아가도 돈만 잘 벌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디서 깨지는가? 하나님 앞에 서면 깨진다는 것이다. 예배의 자리에 오고 기도의 자리에 마음을 열어 놓고 하나님을 찾는 순간 그분의 실재 앞에서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라던지 세상의 형통은 큰 의미가 없고 마침내 그분 앞에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님을 멀리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형통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끝은 멸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는 어떤가 하면 그거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난이 올 때 주님께 피하고 주님의 역사를 오히려 보게 된다고 말씀하신다.그러면서 아삽의 시는 의심으로 시작했다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뀌게 된다.
세상에서 부정직하고 불의한 자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나에게 맡겨지고 주어진 하루 가운데 주님을 찾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2. 정결한.
(요일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신앙의 원리란 그런 것인데, 하나님께서 예배의 원형으로 보여주신 성막을 생각을 해보라. 성막을 보면 주님 앞에 나오는 길을 이해할 수가 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머무를 때 모세를 통해 직접 알려 주신 것이 성막이다. 설계과 구상을 하나님께서 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성막을 만들었다. 즉 성막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도구이다.
성막의 문은 동쪽을 항해 나 있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면 성막에 출입할 수가 있게 되는데 성막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 앞에 크게 보이는 것은 번제단이다. 번제단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소나 양 같은 제물을 올려 드리는 장소이다. 이 번제단을 통과해야 성소와 지성소로 통하는 곳을 걸어갈 수가 있다. 번제는 자신의 죄를 용서함을 받기 위해 속죄 물을 자신을 대신하여 태워는 곳이다.
그런데 이 번제단의 크기가 얼마나 했는가 하면 정사각형인데 각 길이가 5규빗이다. 한 규빗은 팔꿈치부터 손까지 해서 대략 45센티인데,어림 잡아 환산하면 각 변이 2미터 50 정도가 되며 높이는 3규빗으로 대략 1미터 50 정도가 되는 높이를 지닌 커다란 번제단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들어가자마자 그곳에서는 늘 제물이 태워지는 곳이었다. 연기가 올라오고 고기 타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 이 번제단에 석쇠를 놓아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연기가 올라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번제단을 통과해서 주님 앞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는데, 이 번제단이 바로 정결의 첫 통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번제단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정결하지 않은 사람들 임에도 불구하고 정결하다 깨끗하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번제단을 지나 성소에 들어가려면 그 앞에 물두멍이 있었다. 그곳인 손과 발을 씻는 곳이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번제단에서 죄를 씻고,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는 두 번 씻는 행위가 나온다. 즉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결함으로 소중히 여기시는 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주셔서 단번에 우리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의 보좌, 말씀의 보좌 앞에 나가기 전에 늘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가면 사실 우리가 의롭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신다. 그것을 칭의라고 하고,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보좌 앞에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우리 마음 가운데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양심의 회복이다.
오늘 성경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자꾸 여러 가지 범죄 한 것들이 떠오르면 기도가 막히고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자꾸 회개하고 씻어내면서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면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담대함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범죄함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고 깨끗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기에 주님은 그 가운데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 먼저 정결함으로 기도하고 돌아섬으로 응답받는 역사가 있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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